일본군 위안부 만화전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하다
프랑스 앙굴렘(Angouleme)의 국제만화제(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ÉE)는 1974년에 시작된, 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만화축제이며,
현재는 칸 영화제와 함께 프랑스 5대 국제 문화행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 앙굴렘의 모습
그런데 이번 2014년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개최된 제41회 앙굴렘 국제만화제는
한국에서 유례없는 이슈를 일으키면서 연일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아주경제(http://www.ajunews.com/view/20140115013026721)
▲ 제41회 앙굴렘 국제만화제 한국만화 기획전의 포스터
첫번째,
2014년이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이번 앙굴렘 국제만화제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내용의 만화가 다수 초청되었습니다.
이에 한국의 만화가들은 '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 慰安婦)'를 소재로 한
만화 작품 24개를 출품하였습니다.
이 기획전의 이름은 <I'm the Evidence>이었습니다.
두번째,
한국 만화 기획전의 주제가 외부에 알려지자
'나데시코 액션' 등과 같은 일본 극우 단체 등이
앙굴렘 국제만화제 조직위원회에 전시회를 취소하라는
탄원서를 개막 당일까지 1만 6천 여 통을 보냈으며,
"위안부는 조작되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건 부스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조직위원회로부터 철거당할 만큼,
일본의 방해가 심했습니다.
여러가지 우여 곡절 끝에
앙굴렘 국제만화제의 한국만화 기획전 <I'm the Evidence>는
성황리에 별 탈 없이 막을 내리게 되었고
최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인해 경색된 한일관계와
'위안부'라고 하는 사안의 민감성에 의해 수많은 이슈를 몰고 왔던 만큼
다시 한국에서 앙코르전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관련 뉴스 :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전시된 일본군위안부 만화 부천에서 18일 전시 시작
(국민일보 쿠키뉴스 2월 14일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008037650&cp=nv
동아시아청년네트워크 회원들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은 있었지만,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부천 만화박물관(www.komacon.kr/museum)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전시는 2월 18일부터 3월 16일까지 진행되고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7호선 삼산체육관역 5번 출구와 가깝습니다.
'위안부'....
일단, 이 위안부 만화전을 보기 전의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한국사람이지만,
사실 그 동안 위안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저지른 악행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었고,
성(性)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성에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위안부' 이야기를 사적인 대화의 화제로 꺼내는 것은
여전히 입에 담기 민망하고 부끄러운.. 상당히 민감하고 껄끄러운 이슈였습니다.
또 강제 노역이나, 강제 징집 등 다양한 일제의 악행이 존재하는데
굳이 '위안부'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성적 이슈의 자극성을 노려 일본에 압력을 가하려는
한국정부의 일종의 정치적 술책이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위안부'에 대한 많은 생각이 정리되었고
위안부에 대한 저의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모든 '정치적' 이슈를 떠나
'인권'의 문제이며,
전세계인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라는 것을 말입니다
▲ 이번 앙코르전 <지지않는 꽃>의 간략한 소개
▲ 기획의도와 함께 박재동 작가의 '끝나지 않은 길'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
그 중 전시장 초입에 걸려 있던 박재동 作 <끝나지 않은 길>이라는 작품은
이번 전시의 주제의식을 선명히 보여준다고 생각되는데,
의도적으로 가로로 긴 캔버스 양쪽 끝에
각각 뒤돌아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고 있는 소녀의 작은 몸으로부터
멀리 존재하고 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고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황폐하고 음험한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다.
평범한 소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텐데,
그녀의 바람은 영원히 이루어 지지 못하고 말았다는
너무나 간명하고 처절한 아픔을 잘 그려내고 있다.
▲ 김정기 作 <꼬인 매듭>
<꼬인 매듭>이란 작품도 좋았다.
'위안부'는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던 일본제국과 분리되어 이해할 수 없다.
여자들은 위안부로,
남자들은 징병, 징용의 대상으로 희생되었다.
다양한 전쟁의 실상이 한 폭의 그림 안에 잘 녹아있어
당시 참담한 실상을 잘 보여준다.
한편 많은 관람객들이 관심을 보였던 김광성 作 <나비의 꿈>은
위안부 피해자의 실제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서사적 만화였다.
돈을 벌러 가게 해준다는 말에
일본으로 떠나는 배를 탔는데,
사실 그 배는 '버마'에 도착했고,
소녀들은 위안소에 배치되어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게 되고
마침내 일본이 패전하자
인권유린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일본군에 의해서
집단으로 살해당하거나 일부는 탈출해 조선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점은,
버마로 끌려간 소녀들이 배치되는 위안소의 관리인은
창씨개명하여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조선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조선인이 위안부의 모집과 관리에 관여했다는 것은
다른 만화에서도 보인다.
▲ 김금숙 作 <비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비밀>이라는 작품에서는
가난한 시골 소녀가 일본군과 알고지내는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속아
일본군을 따라 나서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 <비밀>의 한국어 번역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강제 모집이 가장 극성이던 것은
1940년대 중반, 태평양전쟁의 말기일 때다.
이미 조선이 일본으로 강제 병합된지 30년이 되어가고 있던 시점으로,
이미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고[창씨개명]
대일본제국의 2등 신민으로 살아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조선인으로서 조선인을 약탈하고 파괴시키는 것이 즐거웠을리 없다.
1등 신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던 일본인은 이해할 수 없는
이중의 괴로움을 조선인들은 겪어야 했을 것이다.
무식과 가난 속에서 내가 살기 위해서 내 동족을 짓밟아야 했던
수많은 무명인(無名人)들은 분명히 존재했었고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위안부로 끌려갔던 대다수의 소녀들이
시골 출신에 부모가 없거나 가난한 집 소녀들이 다수였다는 사실은
위안부의 문제를 간단하게만 볼 수 없게 만든다.
한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계층들을 대상으로 한
모든 범죄의 연장 선상에서도 '위안부'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 <나비의 꿈>에서 위안소 관리인의 말
"이곳은 대일본제국 성스러운 황군(皇軍)의 전쟁터다!
이러한 비상시에 여러분들은 황군의 사기를 높일 중대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다!"
위안소 관리인의 이 말은,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살인, 강간, 방화, 약탈, 납치 등 모든 악행이
"성스러운 전쟁(聖戰)"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만화 중에는 언뜻언뜻 이 소녀들(위안부)이 상대한 군인에 대한 정보가 비치는데,
그들 중에는 소위 가미가제(神風)이라 불리는 자살특공대들이 있다.
어린 여성들을 끌고가 성을 착취하고
어린 남성들은 전장에 목숨을 버리게 했다.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당시 일본 본토 역시 전시 총동원 체제로
자유와 민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군인, 군속, 군의관, 간호사로 동원된
일본 국민들 역시 학살과 생체 실험 등
잔혹한 전쟁 범죄에 동원되면서도
모든 것이 천황 폐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이게 정상인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믿고 죄책감을 모두 쓸어가 버린
이들의 집단 마취의 원인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성스러운 황군(皇軍)!
그 중심에 덴노(天皇)가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일본 히로히토 덴노는 전범(戰犯)이고,
아직까지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이 제도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머리를 곱게 딴 소녀의 뒷모습이 설치물로 제작되어 있다.
앞 모습이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다.
거울이었다.
그 안에는 관람객의 모습이 비춰보이는 것이다.
전쟁터의 소녀들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했었다"라는 사실 만큼은 잊지 말아달라는 메세지였다.
그리고 잊지 않는 것은 우리들 개개인에게 달린 책임이라는 무거운 진실을 전해주고 있었다.
▲ 탁영호 作 <꽃반지>에서도 평화로운 서울의 모습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참한 경험과 대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입게 된 지는 사실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 신지수 作 <83>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좋아했던 작품이지만
다들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작품인 <83>.
한 마디 대화도 없는 그림들이 매우 큰 감동을 주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 및 법적 조치를 요구하는
수요집회를 열고 있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수요집회에 참가 중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결국 고령으로 인해 돌아가시자
할머니가 위안부 시절을 겪기 이전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모든 걸 훌훌 벗어버리고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잠깐 위안부 이슈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보자.
위안부가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측의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는 오랫동안 조용하다가 90년 대 들어서 갑자기 등장했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이다.
첫번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증언한 이는 1991년의 김학순 할머니이다.
그 전까지 '내가 바로 위안부였소'라고 말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 김금숙 作 <비밀> 중
아래 한국어 해석
일본의 패전과 함께 지옥같은 위안부 생활을 끝내고
간신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으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고
여성인권도 많이 신장했다.
하지만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했고
주위의 싸늘한 시선을 견뎌야 했다.
<꽃반지>에서도 살아돌아온 위안부 피해자가
주변의 시선과 수군거림에 상처입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만약 당신이 90년대부터 갑자기 나타난 위안부 증언자들에 대해서 의혹을 가진다면,
나는 되묻고 싶다.
"만약 당신이 젊은 여성인데, 10대 때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면,
과연 매스컴에 나서서 과거의 경험에 대해서 진술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살고 싶었을 거다.
▲ 탁영호 作 <꽃반지> 중
하지만 90년대 초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노동성 직업안정국장이
"위안부는 민간업자가 데리고 다녔다"며 일본군의 관여를 부정하자
이에 분노한 김학순 할머니가 "내가 바로 증거다"라고 증언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증언이 시발점이 되어
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이에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 내각 관방장관이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 운영되었으며
위안소의 설치 및 관리, 위안부의 이송에 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 일에 관여했다"고 밝히는
역사적인 <고노담화>가 발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측에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에 '완료'되었다고 하는 인식 아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1995년 설립하였고,
이는 일본 정부의 예산이 아닌 민간에서 모금한 기금으로 운영되었다.
또한 1995년에는 무라야마 총리가
"과거의 한 시기, 국책을 그르쳐 전쟁으로 가는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라고 말하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의 대다수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기금>의 방식에 납득하지 못했다.
실제 <기금>의 보상금을 받은 피해자는 전체 신고된 피해자의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으며
이는 피해자들이 이같은 처리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기금>은 2002년 사업을 종료하고, 2007년에 해산하였다고 한다.
▲ 이번 앙코르전에는 영상실이 따로 있어서 4편의 애니메이션과 함께
앙굴렘 한국만화전에 대한 언론 보도 및
그간의 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에 대한 해설이 있으니
꼭 들러보아야 한다.
현재 한국에 살아있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5명이며,
평균 연령 88세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공식적 법적 책임 감수를 요구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호소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일본 정치 구조를 볼 때, 이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발간한
<한일 역사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참고하면
실현 가능한 대책으로는
1) 한일 중재재판 위원회 구성에 따른 사법적 해결
2) 재단이나 기구를 설치하여 문제를 해결
3) 양국이 외교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
이 세 가지 정도이나
1번 안의 경우 1965년 청구권 협정 해석과 매우 긴밀히 얽혀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고
한국 정부가 주체로 나서서 매우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실제로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에서는
위안부 및 한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외교적 구명 운동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한국 정부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바 있다.)
2번 안의 경우에는
앞서 시행되었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있었으며
그에 대한 평가는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새롭게 재단이나 기구가 꾸려진다고 할 때 역시 문제가 될 확률이 높다
3번 안의 경우는 가장 현실적이지만
외교적 타결을 위해
정부나 정책 지도자가 국민의 비판적 여론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노다 정부에서 3번 안(총리에 의한 사죄, 정부 예산에 의한 보상 등)을
조용히 추진하고 있었으나
아베 정권의 자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모든 것이 무산된 상태라고 한다.
위와 같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고하면,
매주 수요집회를 열며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전혀 꿈쩍도 안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해자들에게는 여전히 불충분한 대응이었고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일본도 일본 나름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 이현세 作 <오리발 니뽄도>
그런 점에서
이번 앙코르전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것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오리발니뽄도>라는 작품이다.
여기서 위안부 피해자인 소녀가 마치 항일투사처럼
사무라이 갑옷을 당당히 밟고 있다.
위안부에 대한 이런 이미지는 옳지 않다.
위안부는 항일 투사도 아니고, 미안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도 아니다.
일본인을 '악마' '괴물'로 보면 모든 악행이 오히려 정당화되고 만다.
오히려 (용서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보아야 해결책이 보인다.
일본도 한국도 이 문제를 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
비난과 비판만으로는 아무것도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한국사람으로 태어났을까?
그들도 일본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일본사람으로 태어난 건 아닐 거다.
당시 전쟁 경험자들은 이미 사라지고 있고
역사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세대들은 서로의 책임만을 강조하고
협상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 분들에 대한 책임은 우리 세대에게도 있는 것이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10년 내로 모두 돌아가시고 말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완벽한 해결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 총리나 일본 덴노로부터의 공식적 사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아무리 불충분하게 느껴지더라도
한국도 이제는 어느 정도 수용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위안부들의 존재가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 영상실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콩고 내전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여성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어디까지 훼손할 수 있는지
그것을 바라보며 후세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가 교과서에 위안부 등
2차 세계대전에서 벌인 잔학 행위들을
반드시 청소년들에게 교육시키고
책임감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역시도 비난 일색의 정책 및 언론 보도를 벗어나
생명 및 인권에 대한 교육에 강조점을 두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 전시장 입구에 이번 앙코르 전의 취지를 소개하는 판넬에는
관람객이 직접 소감을 적을 수 있다.
전시를 보고 나니
초등학생 때 읽었던 만화 <쥐>가 생각났다.
<쥐>는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전쟁의 실상을, 참상을 깨닫고
또 상대와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전시회가 그런 콘텐츠의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여러모로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으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용기내어 증인이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관심을 가져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인권이 유린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드리고 싶다.
전체 출품작품을 보고 싶으시다면,
http://blog.naver.com/simbeau?Redirect=Log&logNo=50188234857
참고 : <한일 역사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풀 것인가?>, 지식산업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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